0. 탈레스 그는 누구인가?
탈레스는 기원전 약 547년 ~ 기원전 546년 경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할 정도로 그의 업적을 높게 보았으며,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 7대의 현인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지는데, 밀레토스 학파는 세계 모든 것들이 아르케라는 본질적인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였던 학파이다. 그들은 우주에서도 새로운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탈레스가 일식을 예언했다고도 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일구어놓았던 과학적 지식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할 수 있다고 하겠다. 탈레스는 공식적으로 문헌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대의 기록을 통해서 탈레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기하학의 정리는 5가지가 있다고 전해진다.
1. 시대적 배경 _ 고대 그리스
그리스의 위치는 아래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유럽 아래쪽에 그리스와 터키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탄생 배경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어떻게 문명이 탄생했는가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는 방대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기원전 약 3300년서부터 로마의 침략 시기까지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방대하고 지대한 영향력을 서양 문명 전반에 끼쳤다. 방대한 그리스의 역사에서 탈레스가 살아있었던 시대에 대해 알아보자. 탈레스가 속한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고졸기 그리스에 해당한다.
고졸기 그리스는 기원전 776년 올림픽 게임의 성립을 시작으로 기원전 480년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끝으로 그 시기가 구분된다. 고졸기에 대한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아 자료가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 해당 시기에 대한 정보의 증거로 고졸 기를 설명한다.
기원전 8세기 동안 그리스의 인구는 두배로 급증했는데, 기원전 1000년에 아테나 또는 크노소스 같은 매우 큰 거주지는 인구수가 1500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졸기에 들어서며 5,000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특징적으로 큰집과 작은집의 숫자를 통해서 경제적 불평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그리스는 경제적인 자유도와 함께 어느정도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판단된다.
그 당시는 전쟁이 없는 시기였으나, 경제적인 불평등 또한 존재하고 인구는 계속 늘어가는 시기였다. 더군다나 탈레스는 올림픽 경기를 즐겨 보았다고 하니, 전쟁이 없는 이 기간 동안 문화력의 전파와 삶에 대한 질의 향상이 이루어졌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문명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인구가 늘어가고, 사회적 불평등이 늘어나게 되면 기존의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반항 세력이 형성되곤 한다.
2. 탈레스의 업적
탈레스는 수학과 천문학을 좋아하고, 천문학을 통해서 기원전 585년에 일어나는 일식을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이미 천문학을 통해 하늘의 현상에 대해 탐구하고 그 현상을 예측하는 등의 지식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탈레스가 밀레토스 학파를 창시했다고 전해지니, 그를 따르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억압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탈레스의 재미난 일화 중 하나는 잘사는 사람만 잘살고 못 사는 사람만 못 사는 사회에 대한 불평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가 돈을 벌게 된 이야기이다. 그 친구에게 머리를 써보라고 조언한 탈레스는 자기가 여행 다녀 올 동안 한 번 벌어보라고 대꾸하는 친구의 말에 그가 여행 다녀온 동안에 돈을 왕창 벌었다. 그는 그들의 사회에 값어치가 높았던 올리브의 생산량이 줄어든 것을 보고, 올리브 압착기를 독점하여 올리브 풍작이 되는 날 그것들을 빌려주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전해진다.
탈레스의 일화는 그가 얼마나 자연에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는데, 현대의 사람들이 듣기에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소리겠지만, 그의 언급은 단순한 지식에 그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주장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두 가지이다. 수긍 그리고 비판이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한 그의 주장은 과학적, 철학적 탐구에 기반을 닦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긍하는 사람들은 수긍의 근거를 찾으려 했을 것이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근거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의 주장은 단순한 주장이 아닌 질문과도 같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자의 아버지'라고 칭한 것이 아닐까?